나의 산행일지

승봉도 1박2일 비박여행기 2016.09.16~17

장군601 2016. 9. 10. 22:32

 

그렇게  무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지나가고 조석으로 선선한  가을끼가  완연한 8월23일  불현듯  다른해 보다 긴 추석 연휴가  떠올랐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라던데  모처럼 긴 연휴를 맞이하여 여행을하고 싶어졌다. 그래  나도 이번 추석에 떠나보자.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란 카피도 있었지않는가?  안내  정보를 뒤졌다. 마침내 전 부터 가고 싶었던  마땅한  섬을 찿았다.  그곳은  "죽기전에 한번은 가봐야 할 곳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였다. 그것도 추석  다음날 1박 2일로 가는것이라  차례를 지내고 다음 날 갈 수있어 심적으로 부담이 없어 좋다. 사진으로 보니 영남 알프스  대초원같은  개머리 언덕 초원에 텐트치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비박하는 모습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충분했다. 해안가에는 코끼리 바위등,기암괴석이 있었고, 썰물후  해수욕장모래 속에 숨어있는 백합 조개잡이 등은 멋진 추억을  만드는데  손색이 없을거 같았다.  그중  제일하고 싶었던 건, 찌든 서울 하늘에선 볼 수 없는 밤 하늘의 은하수를  어린시절 떠올리며  한번쯤 보고 싶었다. 또한 우럭도 많아  잘 잡힌다하니 방울 낚시라도 밤에  담가보고 싶었다. 낚시 끊은지 30년도 넘었지만, 손맛은 아직 감각적으로  살아있겠지? 미소를 지어본다.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생각해보니 "옆지기랑 가는 것" 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했다. 즉시 친구들에게 원정산행란에   글을  올리니  참석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올라왔다. 며칠  지나 20명이나 되는 적지않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사람은 내 친구들과 또한 부부 동반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려고 신청했으나, 내 친구들이 많이 가니 즐겁게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러갔다 오라며 배려 차원에서 집사람은 취소했다. 안그래도 되는데 연휴에 아들 내외가 와있기도해하니  겸사해서 나를 배려해준 차원이다. 운집이 친구는  바로  얼마전에  굴업도 다녀온 비박사진을 올렸다. 그 친구는  너무  좋은 곳이고, 친구들이 간다니 고맙게도  "먼저 개인적으로 하루 먼저 굴업도로  들어가 텐트 쳐 놓고 육 고기 잔뜩 가져가 우릴 기다리겠다"고 했다. 고마운 친구다. 들뜬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우린  최종적으로  준비물 점검도 할겸해서 9월5일  저녁에  종로에서 번개모임을 가졌다.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이튼날 9월7일 컴에  들어가보니 그동안  70명이나 되는 많은  신청자가  몰렸고, "굴업도 여행 신청 마감한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제목의 글이 올라 와 있었다. 아! 이제  며칠만  지나면 육지를  떠나는구나!  나는  최종적으로  확정된 우리  친구들의 명단과  승선정보, 회비납부 완료 정보를 보냈다. 이제 마음 놓고  일에  열중하다가  떠나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래  나도  떠나보자구~~

 

다음날 9월8일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5시에 나와 아침 8시  일하는 차에  올랐다. 사업상 이틀에 한번 주유소를 가야 핳 정도로 운전을 많이 하는 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데, 오전  9시10분  문자가왔다. 핸폰을  열어보니 "여행 담당자"의  긴 문자였다. 내용인 즉  "선박 정기점검으로 여행 취소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너무 당혹스러워 한참을 차안에서 멍하니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멍해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차안에 있던중에 지기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얼른  받아보니  여행취소 문자가 왔다는 얘기를 한다. 지기님도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나셨는지 담당자에게 전화걸어 막 해댔단다. 일단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일했다. 도무지 일 하는데  재미 있을리가 없었다. 하루종일  시무룩해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끝냈다.  집에 돌아와 나도  담당자에게  전화로 따졌다. "선박 정기검사면 1달 전부터 사전 공지가 있었을텐데 며칠 전에도 사람 데리고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  그것도 몰랐냐고" 막 해댔다. 연실  "죄송하다고" 수화기 넘어로  들려왔지만, 흥분한 나는  막 쏴대고  수화기를 끊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다.  다른 곳에서는 굴업도 여행을  진행하는지가?  궁금해져 알아보니  산수에서도 우리가 가기로한 다음날인  17~18일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쪽도  우리와 똑 같은 내용으로 취소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못가는데,  너희라고  갈수있냐? 새삼  예견됐던  뻔한  내용이지만,  만일  우리는  못 가는데  그쪽만 거기 간다면  아마 난리를 쳤을 것이다.  선박 정기검사로 배 운항을 못해 대체 선박을  투입 하였으나,  배가  너무  느려  하루  2번이상  운행할 수 없고,  우리가  배를 이용할수 없는 시간대라   취소 됐으니  할수없는 애기지만, 속이 너무 상해서 퍼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않고  있을수는 없었다.  내 생각을 건의하려고  지기님께  전화를 걸려던 참에 지기님께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굴업도 여행이  취소 되었다고  공지 띄우라신다. 당연한 조치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곤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1박 2일로 가자고 건의했다.  알아 보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10일날  오전 일하면서 친구들에게  환불 요령을  문자로  알려 줬다. 오후  늦게 지기님 연락이 왔다. 승봉도로 목적지가  뜻하지않게  변경 되었으니  참석여부를  다시  최종적으로 알아보고  일괄 예매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도울 생각으로  승봉도 참석 여부에 대한 가부를 답장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마음 같아선 금방이라도  다  갈 것이라는 답장이 오리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으나,  답장은 추석 명절 밑이라  바뻐서인지  아무에게도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전화를 했다.  사정이  생겨  못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몇번  다녀간 곳이라 취소하는 친구도  생겼다.  어렵사리 통화끝에 최종적으로  인원이  15명으로 확정되고  지기님이  일괄적으로 배편 예약을  끝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두다리를  쭉 뻗고 편히 잘수있게 된것이다.  즐거운  추석날  차례를  지나고  짐을  꾸리려고 오후에  집으로 왔다. 혜자친구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까지 전철로 시간이  안맞아 신랑이 차를  가져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택시타고 가능역에서 05시30분  합류하기로 했다.

 

드디오  날이  밝았다. 택시 타고 새벽  5시25분 가능역에  도착해보니 거의 동시에 명희친구가 왔다. 잠시후  혜자친구네  차가  도착해서 우리는 짐을 싣고 인천 연안 부두로 향했다. 6시40분쯤 연안 부두에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와 주차장 빈자리 찿는데 약간의 시간을  허비했다. 간신히 차한대 댈수있는 원 주차공간이 아닌  빈공간에 차를 주차했다. 친구들과  잠시 여유 시간을 이용해  길건너  해장국집으로 아침 식사를하러 갔다. 가는도중 뱃시간이 임박해  아무래도 무리 같아  발길을 돌려 대합실 안에있는 우동집으로 가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예매권을 승선권과 바꾸어 나눠 같고  시간이되어 승선했다. 승선 직전 신분증과 개인 승선표를 일일이 대조하는 통에  우린  아무렇게나 가지고 있었던 승선표를 꺼내  서로 승선표 이름을  외쳐대며  서로 바꾸는 촌극을 벌이며 입장했다. 우리는 3층 갑판으로 올라가 명희 친구가 가져온 대형 깔판을 깔고 둥글게 큰 원을 그리며 앉았다. 쌍고동이  울리며  배는 출발했다. 시장하던차라 친구들은 주섬주섬 배낭에서 음식을  꺼냈다.  우리는 가져온 과일과  음식으로 요기를 하며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떠나가는 배에  몸을 맡기고 즐거운 여행은 시작되었다.어느틈에 명희친구가 양주를 꺼내왔다. 3병이나 준비해왔단다. 아마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에서  대접하고 싶었던 마음일게다. 치즈 햄말이 안주와 잔까지 준비해온 마음 따뜻한 내친구 명희가 따라주는 양주맛이 주책맞게 왜? 맛난걸까? 이민 떠나는 그 친구 이제 볼날이 얼마 남지있지 않아 그런지 가슴 한켠이 아련해왔다.

 

 

 어느듯 2시간이  지나  배는 목적지인 승봉도에  도착했다. 부두가에는 트럭 2대와  미니버스가 와 있었다. 짐이  많기  때문에  거리는 가까와도 도보로  이동은  무리다. 회를 팔어주는 조건으로  무료  왕복  승차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버스에  짐을  싣고  아일랜드 해변에  도착해 보니  휴가철이  끝나  한적한게  마음에  쏙 든다.  짐을  내려 정리해가며  텐트를쳤다. 나는  2인용이라 아주  간단하게 텐트를 쳤다.  지기님은 큰거  3동을 가져왔다. 운집이 친구도  3동을 가져왔다. 모두들 합심해 텐트를 쳤다.  텐트 쳐 본지  오래됐는지, 아니면 뽈대 부속물을 분실했는지, 짝이 안맞으니  지기님이  쩔쩔매신다. 호국이 친구가  도와주었는데, 이렇게도 안되고 저렇게도 안되니  서로  옥산각신하다  간신히  텐트 한동을  마무리했다.  나머지  2동은 그나마 수월하게  쳤다.  운집이 친구는  여행가라 그런지 본인이 가져온 텐트  3동을  혼자서도  능숙하게  집을  짓는다. 집을  거의 다 지을 무렵  점심겸으로 해서 준비해 간 떡 만두국을 끓이고,  한쪽에선 압력 밥솥에 밥을 지었다. 누릉지도  적당히  생기고  밥맛도  일품이다. 그사이 지기님이 가져온 대형 그늘막도  텐트 사이에  쳤다. 이제  훌륭한  텐트 부족과  대형 그늘막 연병장이 생겼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해변 걷기와  수영을 하러 나갔다. 해변가에는 미역, 떨어져 나온 석굴, 칠게,등이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물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들어 가야겠다는 생각했었는데,  아뿔사  웃옷만 여유분으로 2벌 가져오고 중요한  반바지를 안 가져왔다.  용림이 친구에게  "나  갈아 입을 바지 없어 바다에 못 들어 가겠다."하니 자기  여유분 반바지 빌려 주겠단다. 하여  난  긴 바지 입은채로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혜숙이 친구는 수영을 참 잘했다.  자유형도  잘하고  배형도  잘했다. 난희 신랑은국제  선수급 실력이었다. 그 친구는 누워서 죽은 송장 처럼 오랜 시간을 팔 다리도 전혀 움직이지 않은채 떠 있었다. 난희 친구는 신랑과 함께라면 " 물가에 가지말라"는 점쟁이 말은 안 들어도 될 것이다. 여친들은 저마다  소녀시대의 감성을  최대한  살리며 바닷가에서 추억쌓기에  분주했다. 그렇게  한참을  물 싸움도 하고,수영도 하고 해변을 같이 걸으며 놀으니 금방  허기가 진다. 텐트촌으로  돌아와 남자들이  호국친구의 셰프장을 중심으로 간식을  해주기로 했다.  떡국떡이 들어간 소 불고기와  순대 찜과 구이 요리다.  한쪽에선 동양화 치매 예방 놀이가 벌어졌다.  간식도  날라주며  뾰찌 이천냥도 얻어왔다. 맛있게 막걸리와 더불어  간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저녁 준비할  시간이  찿아왔다.

 

 

저녁은  약속한 회도  배달시켜 먹기로하고  전화하니  바빠서  배달이  안 된단다. 갈때 사서  선착장에서 배 기다리며 먹기로 했다. 모두들  텐트촌  가운데 대형 그늘막이 있는  연병장에 모였다.  물론  남자들이  저녁 파티를 준비했다. 장작을  사다  모닥불도  피우고,  모두 같이 추는 허들댄스 용림표 레크레이션도 진행하려 했으나,  장작을  파는 곳이 없었고, 또한 모닥불 자체가 금지사항이라서  아쉽지만  운집이 친구가  준비해온  빤짝이 츄리등과 조명등으로 장작불을 대신 하기로했다. 어둑 어둑해지자  지기님이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점등식을 했다. 그늘막에  전등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꽤 여러개의 전등과  츄리 반짝이 등이  켜지니  분위기도 괜찮다. 한쪽에선 직화 훈제 숫불 소고기들이 허연 연기와 붉은 불꽃을 활활 일으키며 익어간다.  역시 근래  먹어본 고기중  제일  맛난  고기임에  틀림 없었다. 난희 친구는 "숫불 훈제에  탄  고기가  너무 맛 있다."며  일부러  더 탄 고기를 찿아 먹었다. 모두들 배불리  맛나게 먹었다. 먹다보니  곡주도 모자란다. 종훈이 친구가  아이스크림과  술을  사 왔다. 다행히  동네  구멍 가게가 100m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다. 혜자신랑과 난희 신랑도 어느틈에  갔다왔는지  저 멀리 양손에 더 들을수 없을 만큼  먹거리를 사오는게  눈에  들어왔다. 배 터지는 날이다. 소화도  시킬겸  노래도  불렀다. 처음에는 큰 소리로 같이  불렀는데,  지기님의 건의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불러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밤 10시쯤  바닷물이  빠졌다. 모두들  헤드랜턴을  머리에 달고 갯벌 체험하러 나갔다. 칠게들이  조그만 바위를 들추니  살겠다고  막  도망간다. 재빨리 손으로 덮쳐  보는데  이판 사판이라고  막 물어댄다. 조그맣다고 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제일 먼저  내가  물렸다. 집게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주루룩 떨어졌다.  꽤나  아프고 상처가 깊다. 지금도 찢어진 상처와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다. 나를 선두로  여러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밤 하늘에 멜로디가 되어 퍼져 나간다. 아픔도  뒤로하고 모두들  소라 고동 , 칠게 잡는데  열중이다. 혜숙이 친구는 주먹만한  벌떡게도 주워왔다. 이렇게  시간 가는줄 모르고  밤바다를  즐기고  밤 늦은 시간에 텐트 촌으로  돌아왔다.  남자들은  밤에  라면  끓여  먹는것도  추억이라고 잡아온 칠게와  고동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역시 해물이 들어가니 맛나다. 친구들은   "니들이  게맛을  알아!"를  외치며 먹는다. "국물이 끝내 준다"고  다 먹고나서  물을 더 넣고 더 끌이자는걸  늦은 시각이라 만류했다.

 

 

이제  잘 시간이다.  우리 텐트촌 서너 발작 앞에는 등대 모양으로 된 모텔급 무료 방이 애들 공부방 만한게 있었는데, 3~ 4명 정도는 족히 잘수있는 큰 창문이 달려있고, 문짝도 달려있는 완벽한 모텔급 방이었다. 모텔 방은 신랑과 혜자 친구가 들어가 자고, 나는 2인용에 같이 잘 사람이 없어  혼자 들어가 잤다. 13명은 3~5인용 텐트 5개에 나누어  잤다. 몇시에  잠이 들었는지는 핸폰 약이  별로없어  일부러  꺼놔 시간을  알수 없었으나,  밤12시쯤 되지않았나 싶다.   난 용림이 친구 반바지로  갈아입고 침낭속으로 들어갔다.  여친의 감칠좋은 얇은  반바지를 입고  홀로 누워있으니  괜스레 야릇한(?) 기분도 잠시 들었다. ~~아침이 되자  텐트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핸드폰 전원을 켜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다. 밖은  훤한데 비가 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텐트 상태를 살폈다.  밤새  비가  왔나본데 다행히  마구  쏟아 지지는 않은 것 같았고  가랑비 정도로  밤새 온 듯했다. 왜 그걸 짐작하냐면,  주위를 살펴보니  물고랑도  안 했는데 어느곳 하나   물 고인  부분이 전혀 없었고,  텐트바닥이  내것은  방수가  안 되는   바닥 천위에  에어 매트를 깔고 잤는데 바닥에  손을 넣어보니  바닥도 별  젖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 비가 많이 내리는 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싸구려 `자랑은 아니지만, 2인용 텐트를  4년전에 중국산 2만 5천원 주고 샀다.  뾸대도 X자로 2개만 치면 되고, 모기장도 속에 붙어있다.  특히 장점은 부피가 애들 아코디언 가방 만한게 텐트 천도 가볍고 얇은 나이롱이라 너무  모두 다해도 500ml 우유팩 한개 무게밖에 안된다. 설치도 혼자 5~10분이면 충분하다.  너무 가벼운게 장점이라  큰산  비박에 가져 다니며 애용을 했다. 거기에 자동 에어매트 인터넷에서 3만원인가? 주고 사서 쓰는데 바닥에 습기 안올라오고 침대처럼 푹신해 편안하다. 그위에 이마트서  산 9900원짜리 여름용 이불겸용 침낭 속에 들러가 있으니  가히  야전 호텔이다.  비싸고 무거운 것 만이 항상 다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핸폰을 전원을  켜보니 7시30분이다. 텐트  지퍼를 열고  빼꼼히  내밀어  보니 지기님이  부지런하게도  우리들 텐트 이상 유무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가랑비가 내렸다. 아직  아침 하기엔 이른 시간이고  편안하니  좀더  누워있다  일어나기로  생각했다. 30여분 더 누워있다 보니  여기 저기  친구들  목소리가  들린다. 텐트 문을 열고  일어나  아침  인사를 했다. "비 오는 줄도  모른채 호텔처럼  아주 푹  잘 잤다."고 용림이 친구가  아침 인사를한다.  "나도 비 오는줄도 모르고  아주  잘잤어" 답변하자 영숙이 친구가 난 개 떨뜻이 떨어고 옷이 젖어  못 잤댄다.  그러자 그옆에  있는  명희 친구도  나도  한숨 못잤어~~"나중에  혜자네  방에가서  조금 잤어"한다.   잠을 잘 못잤다니  괜스레  미안 해졌다. 그때까지  비는  아주  조금씩 내렸지만, 이내 비는 그쳐가고 있었다. 춥다는 영숙이 친구에게  800G짜리  오리털 잠바를 꺼내줬다. 텐트로 새어 들어온 빗물에 옷이  젖어  추웠나보다.  그밖에 다른 친구들은   별로 추운줄 몰라했다. 두 분들에겐 미안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준비해간  부산 오뎅국을  끌였다.  영숙이 친구가가  가져온  북어국도 끓였다.  운집이 친구는 소고기와  삼겹살  직화구이를 해댄다. 어제  많이  먹었던 관계로  중간에 숯불이  모자라자 종훈이  친구가  잽싸게  숯과  술을  사왔다.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차리니  해장술 부터 또 술술  넘어간다. 얼마나 모두들 잘 먹던지  술이  모자라 내가 2번을 더 사왔다. 참으로  맛나게  술과  음식을 먹었다.  영숙이 친구는  친구들  먹일 요량으로 해녀가 되어  해변가로 나가 칠게와 소라등을 많이도 잡아와  삶았다. 나무 젓가락으로 요지를 만들어 빼먹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이렇게 점심까지 구수한 밥과 음식으로 즐기며  해변도 한번 더 거닐어보고  우리는 짐을  쌌다. 선착장에서 먹을  회를  주문하고,  버스에  올라탄 우린 승봉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거기서도  우린  배를 기다리며  맛난 자연산 광어회 안주로  술을  먹었다. 술술 잘도 들어간다. 자연산 광어회가  너무  싱싱하고  쫄깃하고  맛나다.  운집이 친구는  배에서 또 맛나게 먹겠다며  두접시를 더 사왔다.  배에서 우리 친구들과 또 먹는단다. 15시40분 인천행 배에  올라타 3층 좌현 갑판위에  자리를 잡고  우린 2열로 나란히 기대어 앉았다. 운집이 친구가 사온  광어회를 안주로  술을 또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정말  너무  맛있다. 또 게눈 감추듯  술이  없어지니 종훈이 친구와  운집이 친구는  매점에서  연실 족발과 술을  사 날른다. 참으로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도 않고, 배도 부른데 한없이 들어갔다.

 

 

인천항에 도착했다. 인천 부둣가의 아름다운 석양을 등지고  서남빌딩 먹거리 골목으로갔다. 밴뎅이회 비빔밥으로 뒷풀이겸 저녁식사를 맛나게먹고 즐거웠던 1박2일 승봉도 비박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올때처럼 승용차에 나눠타고 북작대던 인천을 빠져나왔다. 나는 가능역 앞에 도착해서는 헤어져 역으로 향하는데 명희 친구가 나를 부른다. "헤자네 신랑이 올적갈적 운전해주고 왔는데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며 차는 대리운전 맡기고  맥주한잔 같이 더 하잔다. 사실 나도 왜 그 생각을 안 했겠는가?  다만  그토록 1박 2일동안 겁나게 많이 먹고 또 먹자고 하기가 양심없는 소리같아 차마 말 못했는데, 명희친구가 그 말을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신랑과 혜자 친구는 그렇게 차를 돌려 다시 돌아와 그렇게 우린 한잔 더 했다. 명희 친구가  지하철 막차시간 10분전에 나 먼저 보내줘 난 지하철에 탔다.  명희 친구가 계산을 하겠단다. 그동안 10년 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 이제 며칠 안 있으면 미국 이민간덴다. 그동만 정 들었던 많은 추억들  나도  많이 생각 날 것이다.

 

미쎄스 코리아 출신답게 용림이친구는 키리스마 넘치는 위트와 유모로 우리들의 엔돌핀을 팍팍 솟게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친구야 고맙다. 반바지도 고맙게 잘 입었고, 묵묵히 뒤에서 버팀이 되주는 혜자친구, 큰혜숙이친구, 작은혜숙이친구, 영숙이친구, 난희친구 모두함께 해줘서 정말 즐거웠다. 늘 큰 짐지고 앞장 서 주시는 지기님. 행사때마다 많은 고기로 늘 우리를 즐겁게 봉사해주는 운집이친구. 말없이 심부름도 잘해주며 가끔 시간날땐 썰렁 개그로 우릴 웃게 만드는 종훈이 친구, 늘 앞장서 봉사하는 우리의 진정한 쎼프장 호국이친구, 먼 섬에서도 시간만 나면 와주는 기수친구.  좋은 친구들이 내겐 있어  너무 행복하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해 더 즐거웠다.


이번 비박여행을 통해서  많은걸 느꼈다. 가장 큰것은 친구들이 물심 양면으로  참여해주고, 자발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모든 것이 이루워졌다는 것에 대해 크나 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슴에도 약속을 지키려고 모두 참여하고. 다른친구들에게 불안감 줄까봐  누구 한사람 비 온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이런 친구들이 내곁에 10년동안 늘 곁에 있어줬다는 것이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늘 한마음으로 나도 친구들을 지켜줄것이다.  여친들 또한 여행에서 궂은일 남친들이 한다고 선포했지만, 어느틈엔가 모두들 스스로 일거리를 찿아 도움을 많이 주윘다.  친구들과 함께한 뜻깊은 여행이되어 너무 좋았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