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 2013.03.31.일요일
남 한 산 성 (南漢山城)
2013.03.31.일요일
유일천 약수 ~일장천 약수 ~ 서암문 ~ 우익문(서문) ~ 국청사 ~
전승문 (북문) ~ 지화문(남문)


조선왕조 시대의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도립공원 남한산성 발췌)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왼쪽 골목길로 올라갑니다.
등반 러시아워 시간인지라 등반 하러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세상을 빨리 보고 싶어하는 진달래
청량산이 있는 좌측으로 갑니다.
잠시 쉬는 동안에 마천역에서 올라 오면서 노점에서 산 귤을 먹고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비가 조금 내렸는데, 이곳은 산이라고 비 대신 눈이 어제 살짝 내렸나봅니다.
쓰라린 역사의 세월을 품고있는 성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상 부위에 얼라오니 밑에는 거의 없었던 소나무가 많이 보입니다.
암문 .... 돌 하나하나 선조님들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12시 30분 암문 들어가기 전에 있는 양지바른 성곽밑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 식사를합니다.
참으로 성밖이 궁금합니다. 옛날 우리병사도 저렇게 내다보았겠죠?
성밖에는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지만, 성안에는 토종 소나무가 상당히 많이 군집해 자라고있어 대조적입니다.
우리도 적당한 성벽밑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합니다.
식사후 우리는 자연스런 흙길로 걷기위해 성 바깥 등반길을 이용해 우익문까지 갑니다. 그곳까지 가야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10여분 소요)
펄럭이는 깃발을 보니 더 위용있는 성의 당당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성안쪽에는 소나무가 빽빽히 들어서 있습니다.
배수구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고 세심하게 만든 모습에 감탄합니다.
우익문(서문)이 보입니다.
우익문안으로 들어갑니다.
우익문 안으로 들어가 위례 둘레길 북문쪽으로갑니다.
아치형 돌문 ...빗장을 걸어 문을 닫게한 선조들의 기술 대단합니다.
우익문으로 들어갑니다.
우익문 안쪽
성안쪽 길은 좋으나 대부분 시멘트길이 많다.그래서 우린 성밖 길을 이용했다.
국청사
국청사의 확성기와 풍경 ... 시끄러움과 조용함이 소리없이 교차하는듯하다.
자연스럽게 하늘로 뻗어가는 토종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좋다.
전승문(북문)으로 갑니다.
전승문(북문)으로 내려갑니다.
나물을 뜯으며, 봄을 즐기러 나온 듯 합니다.
전승문(북문)
지화문(남문)쪽으로 갑니다.
비석군
지화문(남문)
지화문(남문)
성 안에서는 청나라 군사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성밖을 내다봅니다. 사람이 조그맣게 보이는것이 약한 존재로 보입니다.그런 측면을
보더라도 그래서 성이 전투에서 중요한 가치가있나 봅니다.
지화문 성 안길
지화문(남문)
철판 갑옷을 두른 지화문 대문
지화문의 평안하고 위용스런 풍경
지화문의 성곽 밖
통일 기원 돌탑이라나~~
우리나라 치욕의 역사가 서려있는 남한산성
치욕의 역사 현장 주변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변에 보이는 건 온통 먹자뿐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는데, 절대 잊지말아야
다시는 그런 치욕적인 일을 두번 다시 당하지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